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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일 좌(金日佐)

출생지 / 1664년(현종 5) ~ 1722(경종 2)

김일좌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어해(汝諧)이며, 호는 만은(晩隱)이고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문정공(文貞公)은 구의 후예이며 진사(進士) 응별(應鱉)의 현손이며 근의 아들로 부안에서 태어났다.

1690년(숙종16)에 30세로 문과(文科) 식년방(式年榜)의 을과(乙科) 제4인으로 급제하였다.
그로부터 벼슬길에 나아가서 성균관(成均館)의 학유(學諭), 학록(學錄), 학정(學正), 박사(博士), 사예(司藝), 직강(直講)을 두루 거쳤고 이어 공조좌랑(工曹佐郞), 이조좌랑(吏曹佐郞),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지냈다.

그리고 사헌부(司憲府)의 지평 집의(持平 執義), 사간원(司諫院)의 정언(正言), 공조(工曹), 호조(戶曹)의 정랑(正郞)을 지냈고, 다시 예문관(藝文館) 대교 (待敎) 사간원(司諫院) 보덕(輔德) 필선(弼善)을 거쳐 운봉현감(雲峰縣監)으로 나갔다가 예조정랑, 성균관 사성(司成) 제주(祭酒)를 지냈고, 다시 회덕현감(懷德縣監)으로 나갔다가 통례원 좌통례(通禮院 左通禮)로 들어왔다.

이어 다시 사헌부 장령, 이조정랑을 지내고 횡성현감(橫城縣監)으로 나갔다가 또 이조정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1722년(경종2)에 병으로 졸하니 향년이 59세였다.

그는 어려서는 학업을 게을리 하더니 크게 깨달아 학문에 힘썼다. 그가 태어난 칠성암(七星庵) 아래의 마을에 전하여 오기를 산천이 빼어나서 3문장이 나온다고 하였는데 과연 월파 최경(月坡 崔勁)과 화순 송래백(和順 宋來栢)과 그와의 3문장이 나와서 세상을 울렸다. 젊어서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을 찾아 그 문인이 되었는데 우암이 그를 매우 사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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